지난 제17대 대통령선거 결과에서 지난 대선들과 가장 두드러지게 다른 점은 1위와 2위 간의 표차였다. 1위인 이명박 후보는 11,492,389(48.7%)표, 2위인 정동영 후보는 6,174,681(26.1%)표를 득표해 무려 5,317,708(22.6%)표의 차이를 보였다. 민주 진영의 참패라 할 수 있다. 비록 투표율이 63.0%로 대선 사상 최저 투표율을 기록하긴 했지만 민심이 현 정권을 심판하고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는 결과였다.

하지만 투표가 끝나기 전까지만 해도 인터넷에서는 이러한 민심의 기류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주요 포탈은 물론 유수 사이트의 댓글의 분위기는 일제히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을 성토하는 분위기였다. 특히나 BBK 동영상이 공개된 이후론 더욱 그러했다. 댓글들의 분위기는 대체로 다른 문제들을 떠나서 '저런 거짓말쟁이'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 물론 이명박 후보를 옹호하는 글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글은 '도덕성이 중요하지 않다는 거냐'는 다수의 질타를 얻어맞기 마련이었다. 박영선 의원의 BBK 동영상 및 BBK 사건의 추이를 해설한 일반 네티즌의 블로그 주소들이 넷상을 떠돌았다. 민주 세력이 턱밑까지 추격했는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결과는 모두 알다시피 전혀 그렇지 않았다.
왜 네티즌의 여론은 민심을 반영하지 못 한 것일까? 왜 이렇게 차이가 난 것일까?

첫째, 인터넷을 글을 올리는 네티즌들은 민심을 대변할 만한 집단이 아니었다. 블로거들을 중심으로 한 넷상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교육수준이 높고 블로그를 관리할 만한 여가 시간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유권자들의 교육수준은 평균적으로는 그보다 낮으며 블로그를 할 만한 여건이 안 되는 사람이 더 많다. 또 오피니언 리더는 아니지만 댓글을 통해 여론을 형성하는 사람들은 인터넷 사용 시간이 매우 높은, 주로 학생층으로 생산 계급으로 하기 힘들었다. 즉 넷상의 글들은 민심의 일부만을 반영할 뿐 전체적인 모습을 반영하지는 못 한 것이다.

둘째, 인터넷 여론은 16대 대선 때처럼 일반 여론을 앞에서 이끌지 못 했다. 인터넷에서 여론을 형성하는 계층이 한정돼있다는 것은 지난 대선이나 이번 대선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지난 대선 때는 인터넷에서 형성된 여론이 강한 파급력을 갖고 대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그 영향이 미미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전략의 실패에 기인했다. 16대 대선의 여론 형성 방향은 이회창 반대는 물론 강한 노무현 밀어주기가 함께 하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선 시종일관 이명박 반대, 즉 네거티브로만 일관했다. 그 네거티브라는 것도 도덕성 문제, 그 중에서도 BBK 문제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는 두 가지 실패의 요인을 안고 있었다. 하나는 이명박을 찍지 않게 한다고 해서 그 표가 민주 세력의 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도덕성은 상당수의 유권자에게는 상대적 가치라는 것이다. 도덕성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는 거의 없지만 그것이 언제나 최우선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유권자도 많지 않다. 극단적으로 말해 살인한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건 용납할 수 없지만 뇌물을 받아먹은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건 용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도덕적 결함으로 인한 마이너스보다 탁월한 능력으로 인한 플러스가 크다면 도덕적 결함이 있는 사람을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도덕적 결함에 대한 지적과 함께 능력에 대한 지적도 함께 이루어져야 했다. 하지만 후자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달리 말하면 정책 토론 같은 것이 없었던 것이다.
이러다보니 인터넷 여론은 도덕성을 상대적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지 못 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이명박 지지자들도 많았지만 어느 후보도 지지하지 않았던 부동층도 많았다. 그러나 댓글 여론은 그런 부동층까지 싸잡아 비도덕적인 사람으로 비난했다. 이명박을 비난하지 않는 사람은 도덕 관념이 없는 사람이 돼버렸다. 노골적으로 그렇게 비난하진 않았지만 그러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포털 댓글놀이의 패거리 특성과 폭력적 저질성이 그러한 경향을 강화했다. 결국 도덕성 문제를 떠난 진지한 토론은 불가능해졌다. 민주적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는 가운데 형성된 여론이 파급력을 갖지 못함은 당연한 것이다.

결국 인터넷의 정치 토론장은 그들만의 잔치였다. 소위 '문빠'들의 활동이 가장 그랬다. 인터넷상에선 여당 지지자보다 더 많은 지지자를 가진 것 같이 보였던 문국현 후보는 5.8%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이번 대선 때 사표 심리가 거의 발동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해볼 때 문국현 후보의 지지세력은 바로 저 득표율 정도였다. 하지만 넷상에선 어디 그랬는가? 과장해서 2,30대에선 58%라도 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 여론이었다.

그많던 '이까'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그많던 '노빠'와 '문빠'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그렇게 정치에 관심이 많았으면서 투표장에도 안 간 것일까? 아니면 볼셰비키 혁명 당시의 '볼셰비키 당'('볼세비키'는 '다수'라는 뜻. 하지만 혁명 당시 볼셰비키주의자들은 소수였다.)처럼 그들은 다수를 자처한 소수였던 걸까?
posted by Saru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