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에 내가 산 아해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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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VA-01, Kuro, Jiji



먼저 뒤에 있는 인형은 <마녀배달부 키키>에서 키키의 고양이인 지지이다.
코엑스몰에서 샀는데 지브리 것답게 엄청 비쌌다. T_T
왼쪽에 있는 건 애니에 조금이라도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아는 에바 초호기!이다.
일본 카이요도 사에서 만든 리볼텍(REVOLTECH) 시리즈 액션 피겨 32번으로
최근 개봉한 극장판 <에반게리온:序>를 바탕으로 한 초호기 새 모델이다.
옆에서 놀라고 있는 애는 역시 리볼텍 시리즈의 쿠로이다.
얘는 구하기가 힘든 애라 일본 출장 가시는 아버지께 부탁해서 받은 것이다. 오늘 도착!
원래 토로를 구하고 시었으나 아버지 말씀으로는 토로는 아키하바라 전체에서 품절인 것 같다.
쿠로로 만족. 뭐 쿠로라도 우라나라엔 가지고 있는 사람 거의 없을 것이다. ㅋㅋㅋ
(토로랑 쿠로는 <도코데모잇쇼>라는 플스 게임의 캐릭터이다.)
리볼텍 시리즈의 특징은 관절의 움직임이 비교적 자유롭고 교체 부품들이 많다는 것이다.
초호기는 어깨 부품을 바꿔낄 수 있고 손만 10종류가 있다.
쿠로는 얼굴만 교환 가능한데 4가지 다른 표정을 갖고 있다. 상당히 귀엽다. ^^
토로는 구할 수 없을 것 같으니 앞으로의 목표는 에바 제로호기이다.
내친김에 이호기도. ㅋㅋㅋ
에바 호칭은 특이하다. 제로호기(EVA-00), 초호기(EVA-01), 이호기(EVA-02).

요즘 카메라에 돈을 안 쓰니 이런 데 쓰는구나. -_-;
posted by Saruman
지난 16일 주한미국상공회의소(ARMCHAM)의 기자간담회에서 윌리엄 오벌린 회장이 한 말이 17일자 한겨레와 중앙일보에 실렸다. 한 사람의 말에 대해 무엇을 기사화했는가에 있어서 두 신문은 두드러진 차이를 보인다. 스트레이트 기사로 보이므로 전문을 인용한다.

한겨레 2008년 1월 17일자

"노무현 정부 정책, 매우 성공적"
주한미상공회의소 극찬 속 FTA인준·외환은 매각 거론


미국 기업인들이 노무현 대통령을 ‘극찬’한 이유는?

16일 서울 롯데호텔에서 열린 주한미국상공회의소(암참)의 기자간담회에서 윌리엄 오벌린 회장(보잉코리아 사장·사진)은 “노무현 대통령이 이끈 정부가 성취한 성공이 없었다면 한국의 미래가 지금처럼 밝지는 못했을 것”이라며, 이례적일 정도로 노 대통령 칭찬에 많은 시간을 할애했다. 그는 “취임 당시 아무도 노 대통령이 그토록 적극적으로 여러 자유무역협정을 추진하고, 매우 복잡하고 공정하며 균형잡힌 강력한 한-미 자유무역협정을 성공적으로 체결할 것이라고 예상 못 했을 것이다. 노 대통령에 대해 역사가 우호적인 평가를 내려줄 것이다”라고 말했다. 또 이라크 파병에 대해서도 “매우 용감한 결정으로, 한-미 파트너십에 큰 도움을 줬다”고 평가했다.

오벌린 회장은 이명박 대통령 당선인에 대해선 “외국인 투자자들과의 만남에서 내내 영어로 이야기하고, 정치적 연설이라기보다 국제적 경영자의 성공적인 프리젠테이션에 가까운 발표를 한 데 깊은 인상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러나 그는 “미국식 티본 스테이크를 한국에서 살 수 없었던 상황은 이해할 수 없다”며, 쇠고기 문제 해결만이 미국 의회의 한-미 자유무역협정 인준을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태미 오버비 암참 대표는 “한국인은 론스타가 돈을 많이 벌고 세금을 내지 않은 것에 불만을 품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데, 외국에선 법을 지켰다면 ‘지나친 이윤’이라는 개념 자체가 성립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김영희 기자 dora@hani.co.kr


중앙일보 2008년 1월 17일자

"론스타 문제, 세계 투자자가 주목"
오벌린 암참 회장


윌리엄 오벌린(사진) 주한미국상공회의소(AMCHAM·암참) 회장은 “이명박 정부가 가장 시급히 해결해야 할 현안은 노동 유연성을 높이는 것”이라고 16일 말했다.

그는 이날 태미 오버비 암참 대표와 공동 주재한 기자간담회에서 “한국이 노동 유연성을 확보하지 못하면 일본과 중국 사이에 낀 ‘샌드위치 상황’을 벗어나기 힘들 것”이라며 이렇게 말했다. 오벌린 회장은 또 “미국 의회 의원들은 미국산 쇠고기의 전면 수입이 이뤄지지 않아 한국 소비자들이 쇠고기를 비싸게 사 먹는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다”고 말했다. 이어 “쇠고기 시장이 전면 개방되기 전에는 미국 의원들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비준에 나서지 않을 것”이라고 전했다.

오버비 암참 대표는 “론스타 문제를 전 세계 투자자들이 주목한다”며 “그 처리가 잘못되면 한국 투자에 대한 예측의 불확실성이 커진 것으로 판단해 외국인 투자가 급감할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그는 또 “해외에선 법을 어기지 않고 이익을 낸 것을 과도한 이익 챙기기로 보는 시각에 대해 납득하지 못한다”며 “한국 법원이 국제적 기준에 맞춰 판결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오벌린 회장은 “전날 이명박 당선인이 외국투자자 지원을 위한 태스크포스(TF)를 만들겠다고 해 기대가 크다” 고 말했다.

표재용 기자 [pjygl@joongang.co.kr]

당연하겠지만 오벌린 회장은 신자유주의적 인사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FTA나 외국인 투자 문제에 있어서 더 전향적인 자세를 보여줄 것을 기대한다. 그리고 노무현 대통령과 이명박 당선자 모두 신자유주의적인 정책을 펴는 인물로서 긍정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그런데 중앙일보에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긍정적인 평가는 빠진 채 이명박 당선자에 대한 발언만 나와있다. 중앙일보 역시 지자한 한미FTA에 대한 긍정적 평가였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조중동의 한 축으로 노 대통령에 대한 과찬(?)은 기사화하고 싶지 않았던 것일까? 반면 한겨레는 한미FTA에 부정적인 어조를 견지해왔음에도 불구하고 오벌린 회장이 노무현 대통령을 극찬한 것을 기사화하였다. 이건 또 뭘까? 설사 문제가 있는 정책에 대한 것이라 해도 평소 욕먹는 노무현 대통령에 대해 '객관적 3자'인 외국인이 극찬한 것을 기사화해주고 싶었던 것일까? 혹 반어적인 것일지도 모르겠다. '외국인 투자자가 이렇게 극찬하는 한미FTA, 과연 한국에 이로운 것일까?'라는 의문을 갖게 만들어주려고 이렇게 기사화한 것일까? 그렇게 보기엔 제목이 너무 노골적이다. "노무현 정부 정책, 매우 성공적"이라니...

한겨레나 중앙일보나 오해하는 것이 있다. 노무현 대통령은 신자유주의자이고 결코 노동자 친화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미국으로부터 독립적이지도 않다. 우리는 그의 말이 아닌 그의 행동과 정책으로 평가해야 한다. 따라서 두 신문의 이념에 대해 내가 이해하고 있는 바가 맞다면 경제 문제에 있어선 한겨레는 노무현을 비판해야 하고 중앙일보는 노무현을 칭찬해야 한다. 이 무슨 '정치적' 행태들인가.

요즘 운하 문제와 관련해서도 얘기가 많은데 눈에 쌍심지를 켜고 운하를 반대하는 사람들은 한 번 돌이켜 생각해보자. 혹시 이명박이 하기 때문에 그렇게 반대하는 건 아닌가? 그 사람들 중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한미FTA에 대해 그런 태도를 보였을까? 한미FTA는 좋은 것이었기 때문에 반대하지 않았던 걸까? 난 한미FTA에 부정적이지만 아직 확신은 없다. 좀더 정보와 토론이 필요했다. 하지만 노무현 정부는 한미FTA 추진과 관련해서 극단적으로 비민주적인 태도를 보였다. 정보를 통제했으며 언로를 탄압했고 여론을 호도했다. 그에 비하면 지금의 대운하 문제는 많은 토론이 이루어지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또 모르지. 이명박 당선자도 취임 후엔 노무현 대통령을 전철을 밟을지 모를 일이다. 나라의 장래 수십년을 좌우할 수 있는 정책들, 최소한의 민주적 토의라도 거쳐야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런 토의의 중요한 논제는 '누구의' 정책이냐가 아니라 '누구를 위한' 정책이냐가 되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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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명: <제국 그 사이의 한국 1895-1919>

지은이: 앙드레 슈미드 Andre Schumid

옮긴이: 정여울

출판: 2007, 휴머니스트

원서: <Korea Between Empires 1895-1919>, 2002, Columbia University Press


‘제국 그 사이의 한국’이라는 꽤 도발적인 표현과 ‘1895-1919’라는 다분히 고증적인 표현이 합쳐진 이 책은 캐나다 토론토 대학 동아시아 연구 분과의 부교수인 앙드레 슈미드가 쓴 750여 쪽에 달하는 방대한 연구서이다. 저자는 비록 외국인으로서 한국을 연구했지만 그 때문에 어쩌면 더 객관적일 수 있는 이 책은 5년을 돌아 ‘고향’(한국)에 돌아왔고, 한국인인 내게까지 전해졌다. 그리고 나의 게으름 탓에 도서관 반납 기일이 일주일이나 연체 됐지만 예약까지 돼있는 이 책을 그냥 반납하기엔 너무 아까웠다. 각주와 참고문헌 목록만으로도 100쪽이 넘을 정도로 객관적 자료에 충실하면서도, 그것이 단순한 사실에 그치지 않도록 과거와 현재 속에서 갖는 의미와 생각거리까지 잘 엮어놓은, 말하자면 씨실과 날실이 잘 엮여진 책이었기 때문이다.


이 책의 제재는 한국 내 역사적 주제 가운데서도 가장 민감하면서도 강력한 주제인 ‘민족’이다. 그리고 한국의 민족 개념의 뿌리를 형성한 담론들이 이루어지던 시대, 바로 1895년과 1919년 사이가 바로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시기이다. 그 이전에 민족 담론이 없었다고 할 수 없지만 근대적 의미로서의 ‘민족(nation)’이라는 개념이 본격적으로 형성된 것은 이 시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책 제목의 ‘제국(Empires)’이 가리키는 한 축은 ‘중화’로서 조선을 지배했지만 열강들에 의해 몰락해가던 중국이고, 다른 한 축은  근대 자본주의 세계 진입에 성공해 조선을 ‘식민지’로서 지배하려 했고 또 그렇게 한 일본이다. ‘나’는 ‘남’과 다름으로써 정의되듯이 이 시기 ‘남’의 역할을 한 것이 바로 중국와 일본이었다. 당시 조선의 지식인들은 과연 ‘조선’이란 무엇이며, ‘조선민족’이란 무엇인가를 중화 세상이 아닌 서양을 포함하는 세계 안에서 정의하려고 하였다. 그러면서 그들은 자기 안에 있는 중국을 발견했으며 그것을 조선의 정체성과는 다른, 순수하지 못한 것으로 보기 시작했다. 몰락해가는 중국으로부터 독립적인 조선만의 정체성 확립을 위해 이전에는 당연한 전통으로 여겨졌던 것들이 배격되기 시작했다. 유교, 한자, 기자조선 등이 그러했고, 독립문은 다른 무엇이 아닌 바로 영은문을 대체했다. 하지만 조선의 지식인들의 목표는 단지 독립만은 아니었다. 눈이 돌아갈 만큼 발전한 서구 선진국와 일본을 본 그들의 목표는 민족의 발전이었고 그것은 곧 근대화였다. 평등한 교육과 언론의 자유, 국가 제도의 정비, 문화·풍습의 교화가 부르짖어졌다. 그런 근대화 물결 속에서 일본은 조선 지식인들의 모범이었다. 아시아 국가들 중에서 유일하게 근대화를 이루어냈기 때문이다. 게다가 일본의 지식인들은 조선에 관한 수많은 담론을 형성해내기 시작했다. 일본에 찬성하는 지식인이든 반대하는 지식인이든 일본의 자료를 인용했다. 조선의 식민지화 계획을 갖고 있던 일본은 전방위적으로 조선에 대한 연구를 해나갔던 것이다.


여기서 슈미드가 중요하게 지적하는 것이 있다. 민족주의와 식민주의는 서로를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정반대의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둘의 정치적 목적은 다르지만 논의의 근거는 모두 문명 발전과 근대화에 뿌리를 내리고 있기 때문이다. 조선의 지식인들은 민족의 발전을 위해 민족의 근대화 논의를 발전시켰다. 미신, 위생 관념 등 문화적인 것에서부터 양반, 사대주의, 붕당 같은 정치적인 것까지 자아비판이 행해졌다. 조선의 민족주의 지식인들은 조선의 근대화를 위해 이와 같은 담론을 만들어냈다. 하지만 어느새 자신들의 얘기가 식민주의자들에게까지 똑같이 쓰이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조선은 미개하다. (스스로) 깨어나야 한다.”는 논리가 “조선은 미개하다. (일본에) 보호받아야 한다.”에도 이용되었던 것이다. 이렇게 둘이 서로가 생산한 지식들을 이용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문명근대화론을 공유하고 있었기 때문이고, 그 문명근대화론의 관점에서 “조선은 미개하다.”는 명제는 자명한 진리였다.


1905년 이후 상황은 급변한다. 민족주의 지식인들은 자신들의 담론이 어떻게 식민주의자들에게 이용당했는지 깨달았다. 하지만 그렇다고 근대화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문명발전론은 민족주의나 식민주의보다 더 높은 차원의 것으로 보였지만 이전처럼 근대화를 무조건 찬양하지는 않게 되었다. 그리고 주권과 영토를 잃은 국민으로서 국가와 민족의 개념을 다시 형성하게 되었다. 신채호는 혈통으로서의 민족 개념을 만들어냈다. 단군으로부터 내려오는 혈통으로서의 민족은 국가와는 독립적으로 존재하는 것이다. 따라서 나라가 망하더라도 민족은 계속 살아남아 명맥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신채호는 또한 영토의 개념도 바꾸었다. 국가의 영토는 일본에 빼앗겼더라도 민족의 영토는 변하지 않는다. 그 영토는 한반도는 물론 만주까지 포함하며 어찌 보면 만주가 더 민족의 고향이자 중심이었다. ‘국가’를 상실한 상황에서 ‘민족’은 더 위대한 개념으로 발전했고 국가로부터 독립적인 것들이 더욱 강조되기 시작한 것이다. 근대화 담론 속에서 비판받았던 풍수지리설도 재조명되어 백두산의 민족적 중요성이 강조되기 시작한 것도 이 시기이다. 물론 만선사관 역시 일본 식민주의자들의 조선과 만주국 지배에 이용될 정도로 이 시기의 담론 역시 식민주의와 혼합되었다. ‘민족’은 민족주의자들만의 독점물이 아니라 식민주의자들의 개념이기도 했고, 다양한 관점과 그 관점의 변천을 내재하고 있었다.


책의 에필로그에서는 현대를 이야기하고 있다. 100년 전 민족을 주제로 치열하게 전개됐던 내용들이 지금도 살아서 민족 담론의 중심 주제를 이루고 있다. 만주 및 간도의 영토 문제, 탈중화로서의 순한글 사용과 한자 표기 문제, 임나일본부설과 광개토대왕비, 그리고 남한과 북한의 민족 정통성 문제까지 말이다. 우리가 깨달아야할 것은 이러한 논의들 속의 민족이 마치 만고불변의 명확한 개념인 것처럼 착각하면 안 된다는 것이다. 19세기말에서 20세기초의 담론들에서 보다시피 민족은 다양한 관점을 가진 사람들에 의해 형성되고 변천한 역사적인 개념이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중요한 것은 민족주의는 식민주의의 대척점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둘의 공통점을 깨달을 때 우리는 식민주의의 교묘한 전략에 대해 더 명확히 깨달을 수 있고, 문명근대화론에 대해서도 비판적 관점을 취할 수 있다. 그렇다고 해서 민족 개념이 무조건 극복하고 깨뜨려야 할 것도 아니다. 민족은 조선을 중국으로부터 독립시키는 과정에서, 한국을 세계 자본주의 체계 안에 참여시키는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또 한국의 민족 개념은 근대화 물결에 의해 갑작스럽게 탄생한 것도 아니다. 슈미드는 18세기 초 청과 조선의 영토 분쟁을 예로 들면서 국경이나 민족에 대한 개념이 비록 완전히 근대적인 형태는 아니더라도 한반도에 존재했음을 보여준다. 그는 모든 전근대 사회가 마치 똑같았던 것으로 오해하면 안 되며, 모든 'nation' 개념이 모든 사회에서 똑같다고 생각해서도 안 된다고 지적한다. 한·중·일 삼국만 해도 민족이 지니는 사회적 함의가 다르다. 중국은 다민족 국가로서 중앙정부보다 민족을 강조할 경우 소수민족의 독립성이 강화되므로 민족 담론을 꺼린다. 일본은 민족을 내세워 전쟁을 일으켰던 경험 때문에 민족 개념이 부정적이며 매우 조심스럽다. 반면 한국에선 상당히 긍정적인 개념이나 그 강력함 때문에 남북한 정부 모두 그 정통성을 취하기 위해 관에 의해 형성된 내용들도 많다. 그리고 남한에선 민중주의 역사가들을 통해 다시 한 번 민족 개념이 변혁을 겪고 있는 중이다. ‘식민주의와 민족주의의 독립성’이라는 매우 도발적인 에필로그 제목에도 불구하고 저자의 민족 개념에 대한 입장은 부정적이라기보다는 조금은 긍정적인 편에 가있다. 다만 강조하는 것은 민족이 역사적이고 혼합된 개념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는 것이다.


이 책은 한 동안 혼란을 겪던 나의 민족 개념을 다시 한 번 돌아보고 정립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나는 국수주의자와 친북 민족주의자들에 대한 강한 반감에도 불구하고 ‘민족’ 자체가 허구인 것처럼 주장하는 일부 진보주의자들의 주장에는 공감할 수 없었다. 혈통적 개념의 민족은 영토적 개념의 민족보다 뒤떨어진 것이라는 주장은 한국의 역사를 무시한 채 서구의 관점에서만 바라보는 또 다른 ‘문명근대화론’일 수 있다. 또 민족을 완전히 허구로 취급하고 무시하는 것 또한 사회적 개념을 물리적으로만 이해하려는 비현실적인 태도이다. 비록 한국의 민족 과잉은 잠재워야 하지만 통일과 다민족 사회를 대비해 민족 개념의 변화를 논의하는 일도 필요할 것이다. 어느 방향을 지향하든 선조들의 민족 담론과 그 변천 과정을 살펴보는 것은 값진 일이며 그 점에서 이 책은 큰 의의를 지닌다. 한국과 역사에 관심이 있는 친구들에게 강하게 일독을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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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ouse arrest

백면불록 2008.01.09 15:13

요즘 몸이 안 좋다.

두 차례에 걸친 과한 술자리 때문이기도 하고, 오락가락 날씨 때문이기도 하다. 그리 춥지 않은 겨울이지만 콧물과 가래가 끊이지 않는다. 지난 주말에 거의 다 나았는가 했더니 산성 안개 때문인지 다시 목이 부었다. 수면 리듬도 깨져서 1시에 잤다 4시에 잤다 규칙이 없다.

마음이 방향을 잡지 못 하고 헤매고 있다. 1월까진 랩에 나오려고 하지만 마음은 이미 랩을 떠나 있다. 요즘은 집이 가장 편하다. 해가 뜬지도 모르게 짙은 커튼을 치고 이불 속에 들어가 있을 때나 한밤중에 스탠드를 켜놓고 책을 볼 때가 가장 편하다. 나 자신을 가택 연금시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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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이따금 꿈 속에서 영어를 쓰곤 한다. 외국인을 만나거나 하는 상황이 꿈 속에서 발생한다. 간밤에는 한 외국인 사진가를 만났다. 우린 금방 마음이 맞아 즐겁에 어울렸다. 그가 나에게 무엇이 좋은 사진을 만드는지 물었다.
"By chance. Just click, sometimes, makes a good picture."
"Yes."
"And more time makes better pictures."
"Yes! I agree."
뭐, 이런 식으로 응답했다. 문법이 맞는지는 차치하고. 그렇게 얘길 나누다가 문득 그의 이름을 모른다는 걸 깨달았다. 그래서 이름을 물어보았더니...
"Time Warner."
"What? The company?"
"Yes. Time Warner."
란다. 이름이 Time Warner라니...-_- 왜 저런 이름을 떠올린 걸까? 요즘 언론 공부를 하고 있어서? 하지만 Time Warner에 대해선 전혀 공부한 게 없는데.

posted by Saruman
오늘자 한겨레 신문에 대통합민주신당의 정치노선 갈등에 관한 기사(http://www.hani.co.kr/arti/politics/assembly/261661.html)가 실렸다. 현재 신당은 지도부 구성을 두고 내부 논란이 거듭되고 있는데 이번 지도부 선출이 앞으로 신당이 나아가야 할 길의 방향을 결정하는 일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이 기사는 노선 갈등을 크게 '견제야당론'과 '선명야당론'의 갈등으로 보고 있다. 전자는 '한나라당 반대'를 모토로 반한나라당 세력을 모두 끌어안아 곧 여당이 될 한나라당을 견제하는 것을 목적으로 한다. 반면 후자는 '신자유주의 반대'를 모토로 시민사회 세력 등을 끌어안아 이명박 정부 들어 더욱 가열차게 추진될 신자유주의적 개혁을 반대하는 것을 골자로 한다. 손학규는 전자에 속하며 아마 손학규가 신당의 대표가 되는 것으로 지도부 선출이 이루어지지 않을까 예상한다.

견제야당론으로의 봉합은 결국 신당을 탄핵 직후 열린우리당처럼 어중이떠중이의 모임으로 전락시킬 가능성이 크다. 한나라당을 반대한다는 것은 극좌부터 온건보수까지 매우 스펙트럼이 넓다. 하지만 신자유주의 반대라는 스탠스를 취하지 않는다면 결국 중도 우파 정도로 자리매김할 가능성이 크다. 결국 이들의 주의주장은 궁극적으로는 이명박 정부나 한나라당과 대동소이할 가능성이 크다. 지금의 한나라당은 남북문제에 있어서도 이전보다 유연한 태도를 취하고 있으므로 남북 평화라는 기치도 이미 빛이 많이 바랬다. 경제 문제에 있어서도 각론에 있어 차이가 있더라도 전혀 다른 제안을 제시할 만한 세력이 되지는 못 할 것이다. 이념적 차이를 차치한다면 김대중 정부나 노무현 정부의 경제 정책도 신자유주의적이었고, 이명박 정부는 그 강화판이기 때문이다. 한미FTA와 관련해 노무현과 이명박이 화기애애한 분위기를 연출한 장면, 조중동의 찬양이 이를 단적으로 말해준다. 즉 견제야당으로서의 신당은 (과장해서 말하면) 보수화한 민주세력의 사쿠라 야당에 불과한 것이다.

진정한 대안은 선명야당론에 있다. 10년을 넘어 이제 15년 동안 추진될 신자유주의 개혁 속에서 비정규직 노동자 및 빈민층이 설 자리는 없다. 양극화는 중산층을 기반으로 하는 시민사회의 역량을 약화시킬 것이며 거대 기업이 사회 곳곳을 지배하며 무한 경쟁 사회를 조성할 것이다. 선진국보다 상대적으로 빈약한 복지 체제 내에서 노동자는 어쩔 수 없이 자본가에 얽매여 약간의 당근에 만족하는 존재가 될 것이다. 아니, 이미 그렇다. 더군다나 그나마 제대로 작동하는 복지제도였던 의료보험마저도 현 정부가 당연지정제를 폐지하고, 한미FTA가 비준된다면 무너져버릴 수밖에 없는 바람 앞의 촛불인 것이다. 한미FTA로 대표되는 미국식 글로벌화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혜택의 대부분은 한국과 미국의 글로벌 기업에 돌아갈 것이다. 물론 우리에게도 삼성 같은 글로벌 기업이 있다. 하지만 삼성이 어떤 기업인가? 가장 반노동자적인 기업 아닌가? 다른 대기업도 크게 다를 바가 없다.

'한나라당 반대'라는 기조는 상대적인 것이다. 거기에는 자기 주장이 없다. 이번 대선의 실패 요인 중 하나도 "너희 아니야."라는 메시지만 있지, "그러니 우리다."를 뒷받침할 근거가 없었다는 점이다. 뚜렷한 기조와 가치야말로 특정 인물에 좌지우지되지 않고, 야합도 없으며, 주요 정책에 있어서 단결하는 당의 모습을 만들어줄 것이다.

그러나 신당이 선명야당론의 방향으로 나아갈 가능성은 지극히 낮다. 선명야당론은 개혁성이 강한 일부 초재선 의원들의 외침일 뿐 다수의 주장이 아니다. 손학규 대표론을 반대하는 정대철, 김한길 등도 전혀 진보적인 인물이 아니다. 결국 현재의 세대결은 기조의 차이 없이 누가 선장을 맡느냐의 차이일 뿐인 것이다.

집권세력으로서, 어쩌면 대운하보다도 국가에 더 큰 부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는 한미FTA를 통과시킨 원죄를 안고 있는 신당이 어떻게 선명한 야당, 대안을 제시할 수 있는 야당으로 거듭날 수 있을까? 아무래도 그 방법은 분당 밖에 없을 테지만 신당 내의 진보주의자들은 세력이 너무 약하다. 꿈에서나 일어날 일일지 모르겠지만 신당 내 진보주의자들과 민노당 내 평등파가 결집해 진보야당으로 결집하는 것을 희망해본다. 그런 꿈이 이뤄지지 않는 한 나는 언제까지나 무당파로 남을지도 모르겠다.
posted by Saruman

... my girlfriend

백면불록 2008.01.05 23:13

이제 1주년을 향해 가는 사랑스런 지현이

확대

posted by Saruman

오랜 친구

백면불록 2008.01.05 23:08

꿈도 울음도 많았던 시절부터 함께 해온 나의 가장 오랜 친구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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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y1

My Say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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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seleuk

My Eseleuk.

posted by Saruman
지난 제17대 대통령선거 결과에서 지난 대선들과 가장 두드러지게 다른 점은 1위와 2위 간의 표차였다. 1위인 이명박 후보는 11,492,389(48.7%)표, 2위인 정동영 후보는 6,174,681(26.1%)표를 득표해 무려 5,317,708(22.6%)표의 차이를 보였다. 민주 진영의 참패라 할 수 있다. 비록 투표율이 63.0%로 대선 사상 최저 투표율을 기록하긴 했지만 민심이 현 정권을 심판하고 이명박 후보를 지지했다는 것을 부정할 순 없는 결과였다.

하지만 투표가 끝나기 전까지만 해도 인터넷에서는 이러한 민심의 기류를 찾아보기 힘들었다. 주요 포탈은 물론 유수 사이트의 댓글의 분위기는 일제히 이명박 후보의 도덕성을 성토하는 분위기였다. 특히나 BBK 동영상이 공개된 이후론 더욱 그러했다. 댓글들의 분위기는 대체로 다른 문제들을 떠나서 '저런 거짓말쟁이'에게 나라를 맡길 수 없다는 분위기였다. 물론 이명박 후보를 옹호하는 글들도 있었다. 하지만 그런 글은 '도덕성이 중요하지 않다는 거냐'는 다수의 질타를 얻어맞기 마련이었다. 박영선 의원의 BBK 동영상 및 BBK 사건의 추이를 해설한 일반 네티즌의 블로그 주소들이 넷상을 떠돌았다. 민주 세력이 턱밑까지 추격했는가 하는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러나... 결과는 모두 알다시피 전혀 그렇지 않았다.
왜 네티즌의 여론은 민심을 반영하지 못 한 것일까? 왜 이렇게 차이가 난 것일까?

첫째, 인터넷을 글을 올리는 네티즌들은 민심을 대변할 만한 집단이 아니었다. 블로거들을 중심으로 한 넷상의 오피니언 리더들은 교육수준이 높고 블로그를 관리할 만한 여가 시간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하지만 유권자들의 교육수준은 평균적으로는 그보다 낮으며 블로그를 할 만한 여건이 안 되는 사람이 더 많다. 또 오피니언 리더는 아니지만 댓글을 통해 여론을 형성하는 사람들은 인터넷 사용 시간이 매우 높은, 주로 학생층으로 생산 계급으로 하기 힘들었다. 즉 넷상의 글들은 민심의 일부만을 반영할 뿐 전체적인 모습을 반영하지는 못 한 것이다.

둘째, 인터넷 여론은 16대 대선 때처럼 일반 여론을 앞에서 이끌지 못 했다. 인터넷에서 여론을 형성하는 계층이 한정돼있다는 것은 지난 대선이나 이번 대선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지난 대선 때는 인터넷에서 형성된 여론이 강한 파급력을 갖고 대선에 직접적인 영향을 미쳤다. 그렇지만 이번에는 그 영향이 미미했다. 이는 기본적으로 전략의 실패에 기인했다. 16대 대선의 여론 형성 방향은 이회창 반대는 물론 강한 노무현 밀어주기가 함께 하는 전략이었다. 하지만 이번 대선에선 시종일관 이명박 반대, 즉 네거티브로만 일관했다. 그 네거티브라는 것도 도덕성 문제, 그 중에서도 BBK 문제에만 집착하는 경향이 강했다. 이는 두 가지 실패의 요인을 안고 있었다. 하나는 이명박을 찍지 않게 한다고 해서 그 표가 민주 세력의 표로 이어지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다른 하나는 도덕성은 상당수의 유권자에게는 상대적 가치라는 것이다. 도덕성이 전혀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하는 유권자는 거의 없지만 그것이 언제나 최우선의 가치라고 생각하는 유권자도 많지 않다. 극단적으로 말해 살인한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건 용납할 수 없지만 뇌물을 받아먹은 사람이 지도자가 되는 건 용납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사람에 따라서는 도덕적 결함으로 인한 마이너스보다 탁월한 능력으로 인한 플러스가 크다면 도덕적 결함이 있는 사람을 선택할 수도 있는 것이다. 따라서 도덕적 결함에 대한 지적과 함께 능력에 대한 지적도 함께 이루어져야 했다. 하지만 후자는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다. 달리 말하면 정책 토론 같은 것이 없었던 것이다.
이러다보니 인터넷 여론은 도덕성을 상대적 가치로 여기는 사람들에게 영향을 주지 못 했다. 그런 사람들 중에는 이명박 지지자들도 많았지만 어느 후보도 지지하지 않았던 부동층도 많았다. 그러나 댓글 여론은 그런 부동층까지 싸잡아 비도덕적인 사람으로 비난했다. 이명박을 비난하지 않는 사람은 도덕 관념이 없는 사람이 돼버렸다. 노골적으로 그렇게 비난하진 않았지만 그러한 분위기가 형성됐다. 포털 댓글놀이의 패거리 특성과 폭력적 저질성이 그러한 경향을 강화했다. 결국 도덕성 문제를 떠난 진지한 토론은 불가능해졌다. 민주적 토론이 이루어지지 않는 가운데 형성된 여론이 파급력을 갖지 못함은 당연한 것이다.

결국 인터넷의 정치 토론장은 그들만의 잔치였다. 소위 '문빠'들의 활동이 가장 그랬다. 인터넷상에선 여당 지지자보다 더 많은 지지자를 가진 것 같이 보였던 문국현 후보는 5.8%를 득표하는 데 그쳤다. 이번 대선 때 사표 심리가 거의 발동하지 않았던 것을 생각해볼 때 문국현 후보의 지지세력은 바로 저 득표율 정도였다. 하지만 넷상에선 어디 그랬는가? 과장해서 2,30대에선 58%라도 나올 것 같은 분위기였다. 하지만 그것은 거짓 여론이었다.

그많던 '이까'들은 다 어디로 간 걸까? 그많던 '노빠'와 '문빠'들은 다 어디로 간 것일까? 그렇게 정치에 관심이 많았으면서 투표장에도 안 간 것일까? 아니면 볼셰비키 혁명 당시의 '볼셰비키 당'('볼세비키'는 '다수'라는 뜻. 하지만 혁명 당시 볼셰비키주의자들은 소수였다.)처럼 그들은 다수를 자처한 소수였던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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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이 시작됐다. 그리고 난 새로 블로그를 시작한다.

새로 만든 닉인 白面이 한자라서 한자로 제목을 지어보고 싶었다.

'블로그'라고 '불록'은 어떨까라는 생각이 들어 '拂錄'이라고 지어보았다.

'글(기록)을 떨구어낸다' 정도로 해석할 수 있을까? 좀 억지스럽긴 하지만 말이다.

앞으로 이곳에 많은 글들을 떨구어낼 수 있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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