견문을 넓힐수록 노무현에 대한 나의 평가는 바닥을 향해가고 있다. 2004년 김선일 씨 사망 사건으로 지지를 접었을 때는 명분 때문에 접었지만, 조금씩 견문을 넓혀갈수록 실질적으로도 노무현 정부는 나라를 망쳐놨다는 생각이 강해지고 있다. 오늘 읽은 <88만원 세대>(우석훈,박권일 저) 253쪽에 다음과 같은 글이 있다.

     현재 한국 경제는 큰 공룡만이 살아남을 수 있는 '큰 것'들의 약탈장으로 변해버렸는데, 원래 자본주의 경제는 그냥 내버려두면 이렇게 된다. 이걸 사람들이 문화라는 힘으로 극복하는 것이 유럽형 경제라고 할 수 있고, 법원이 직접 나서서 약간씩 완화시키는 것이 미국형이라고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지역 공동체가 80년까지 이런 일을 했었고, 박정희에서 김대중 대통령에 이르기까지 중앙정부에서도 나름대로 이런 큰 것들만 살아남는 경제체제로 전환되는 것을 막는 일들을 했었다. 경제개발계획이나 디제이노믹스라고 불렸던 큰 경제담론에서는 이런 작은 것들을 위한 배려가 없는 것 같지만, 박정희 대통령만큼 중소기업을 살리기 위해 매달렸던 대통령도 별로 없고, 김대중 대통령은 아예 팔 걷어붙이고 나서서 벤처 열풍을 주도하기도 했다. 이런 것들이 종합적으로 만들어지면서 우리나라 경제가 나름대로의 균형과 안정성을 만들어냈다. 본인들이 의도했든 의도하지 않았든 그 시기에 할 수 있는 나름의 다양성과 안정성, 즉 '다안성'(多安性diverstability)이 등장한 셈이다. 탈 포드주의 시대로 갈수록 이런 다안성의 전략이 더욱 필요하게 된다.
     중앙정부라는 눈으로 본다면 이런 일을 안했던 것은 노무현 정부가 처음이다. 세계적 독과점화와 프랜차이징 강화는 우리나라 말고도 전 세계적으로 벌어지는 현상이지만, 우리나라처럼 단기간에 공룡들만 살아남는 시스템으로 변한 경우는 없다. 노무현 정부의 경제정책의 비극 중의 하나가 바로 이 '공룡들의 비극'을 만들었다는 점이다.

노무현 정부의 가장 악질적인 점은 바로 안 그럴 것처럼 하면서 저랬다는 것이다. 그래서 진보적인 성향의 사람들조차 자신이 지지하는 정부가 어떤 짓을 하고 있는지 모르면서 그 정부의 이미지만 보고 지지하게 만들었다. 노무현은 진보의 이미지를 가장 악질적으로 이용해먹은 신자유주의자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보면 이명박은 노무현보다 낫다. 그는 보이는 그대로이기 때문이다. 벌써 지지율이 50% 아래로 떨어졌고 사람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하지만 좀더 일찍 불안해했어야 했다. 왜냐면 지난 5년간 벌어졌던 일들이기 때문이다. 앞으로의 5년은 그것의 강화판일 뿐이다. 노무현에 대해서도 비판적 시각을 키워야 이 미친듯한 질주를 막아낼 대처방안을 내놓을 수 있다. 하지만 세상에 '친노반이'나 '반노친이'는 많아도 '반노반이'는 적다. 88만원 세대의 앞날은 우울하기만 하다.
posted by Saruma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