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2일 금요일 오후 5시에 아트레온 1관에서 <웰컴투 동막골>을 보았다. 매우 재밌고 잘 만든 영화였다. 관람을 추천한다. 누구나 즐길 수 있을 만한 영화고 감동도 있다. 하지만 가슴 속에 남아 되새길 만한 영화냐고 물어본다면, 그렇진 않다.

<공동경비구역 JSA> 이후 이런 남북 화해 무드의 영화는 꽤 만들어졌던 것 같다. <JSA>를 비롯해 <태극기 휘날리며>, <동막골> 등이 성공했던 이유는 매우 추상적인 '한 민족이라는 감정'보다는 구체적이고 생생한 인간관계를 통해 남북한 사람들간의 인간관계 회복을 그렸기 때문이다. <JSA>에서 그들은 같은 구역을 지키고 있는, 고생스럽게 복무하고 있는 군인들이었고, <태극기>에서 그들은 형제였으며, <동막골>에서 그들은 거의 같은 마을 주민이 돼버렸던 것이다.

이런 영화들의 긍정적인 효과는 그 동안 북한 또는 북한 사람들에 대해 가졌던 근거 없는 적개심을 없앨 수 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칫 "그래, 역시 우리는 한민족이야."라는 식의 감정적인 접근은 진정한 현실을 파악하지 못 하게 하는 한편 더욱 더 민족주의에 사로잡히게 할 수 있다는 점에서 경계해야 할 것이다. 사실상 <동막골>은 지독한 판타지이다. 오로지 주인공들의 '선한 마음'에 기대어서만 일어날 수 있는 이 기적 같은 동화는 현실에선 존재할 수 없는 것이다. 또 마지막에 연합군(사실상 미군)에 대항해 남북이 연합해 싸우는 모습은 요즘의 감상적인 민족주의 경향에 딱 들어맞는 것으로, 정치적으로 진지한 접근이라기보다는 꽤 상업적인 접근이라고 할 수 있다. 사실 자본주의란 정치도 상업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다. '남북연합군'의 극단적인 모습은 <데프콘>(김경진 작)이란 작품에서 지극히 국수주의적이고 군사주의적인 모습으로 그려지고 있는 것이다. 나는 미국을 옹호하려는 것이 아니다. 다만 남한이나 북한 역시 별로 옹호해줄 만큼 착한 나라는 아니라는 것이다. 남북이 연합해서 미국에 대항하면 '우리 한민족'은 정의롭고 착한 나라가 되는가? '아니올시다'란 말이다.

동막골이나 그 주민들의 이미지도 지극히 도식적임은 말할 것 없다. 사실상 그 원형은 루소도 말한 바 있는 '착한 야만인'이다. '무지'가 '선'을 보장한다는 것이다. 아니, 어쩌면 노자도 그렇게 생각했을 수 있다. 하지만 무지는 선을 보장하지 않으며 모든 고립사회가 다 평화로운 것도 아니다. 하지만 뭐 이런 모티프는 너무나도 많은 작품에서 갖다 써먹는 거기 때문에 이 작품의 단점이라도 특별히 지적할 것은 없다. 하지만 어쨌든 우리는 이게 '뻥'이라는 걸 알아야 한다. 내 견해를 밝히자면 '이상적인 공산주의 사회'도 뻥이다. 뻥을 크게 치면 혁명을 일으킬 수 있다.

이 작품이 성공할 수 있었던 가장 중요한 이유는 사실 캐스팅이었다. 주연, 조연을 막론하고 모두 무리 없는 연기를 보여주었다. 사실 인물에 대한 포커스가 그렇게 강한 영화가 아니었기 때문에 연기가 '매우' 뛰어났다고 말하기는 힘들지만 잘 한 건 사실이다. 사투리 연기도 좋았다. 또 원작이 연극인지라 중간중간 연극적인 분위기도 느낄 수 있었는데 그것이 매우 자연스럽게 영화적으로 녹아들어갔다. 연출의 힘이라 할 수 있다.

암튼 이제는 단순한 도식과 민족주의적 감정을 바탕으로 한 남북화해의 무드보다는 좀더 미묘하고 본질적인 문제를 다룬 남북한에 대한 영화가 나오기를 기대해본다. 사실 진짜 본질적인 문제는 개인과 국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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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50화 짜리 TV판 애니메이션 <기동전사 제타건담>을 며칠 전 다 보았다. 나중엔 정상적으로 보지 않고 2배로 돌려서 보았는데 너무 지겹고 재미 없었기 때문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건담 시리즈의 팬이 아닌 이상 볼 필요가 없는 애니이다. 50화 짜리 TV판의 한계이기도 하겠지만 0080(4편 짜리)이나 0083(13편 짜리)에 비해 짜임새와 긴박감이 매우 떨어진다. 하지만 그보다 더 문제가 되는 건 인물들의 성격이다.

감상문(1)에서도 지적했지만 호승심만 강하고 심사가 뒤틀려 있는 이 애니의 파일럿들은 전쟁에 대해 매우 개인적으로 접근한다. 겉으로는 사람들을 위한다고는 하지만 사실은 동료에게 또는 자신에게 잘 보이기 위해, 또는 자신의 상처로부터 도피하는 수단으로서 전투에 임하는 것이다. 동료에 대한 감정도 헐리우드 전쟁영화에 나오는 진한 동료애나 열혈 일본 만화에 나오는 뜨거운 의리 같은 게 아니다. 평소에 티격태격하다가 죽을 때 되니까 염려하고 슬퍼하는 정도다. 남녀노소가 뒤섞인 속에서 좋아하다 싫어하다 혼내다 별 지랄을 다하다보니 위계가 설리가 만무하다. 그렇다고 이 애니가 <에바>처럼 주인공의 심리를 중심에 놓고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항상 전투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하지만 그 전투에 임하는 인물들의 자세는 비정상적이기 짝이 없다. 에바 식의 비정상적인 인물들이라면 설득력이 있다. 하지만 아무런 배경 설명도 없이 처음부터 다짜고짜 정신병자처럼 행동하는(하지만 아무도 그 사람이 이상하다고 생각하지 않는 상황이 더 이상한) 인물들에게 공감을 느끼기란 힘든 것이다. 그나마 정신에 이상이 있는 인물로 나오는 강화인간들이 더 공감이 갈 정도이다.

가장 어이없는 인물은 레코아 론도인데 처음엔 이성적인 인물로 나오고 파일럿과 스파이 임무를 모두 수행할 수 있는 유능한 군인이다. 그런데 에우고 내의 누구도 자신을 '알고보면 평범한 한 여자'로 여겨주지 않는다는 이유로 신비로운 카리스마를 가진 티탄즈의 시로코에게 전향해버린다. 결국 원하는 건 카미유의 '여자친구'가 되는 거면서 괜히 파일럿으로서의 자신의 능력을 증명해보이고 싶어하는(그러면 카미유가 좋아할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화 유이리도 이상하다. 암튼 다 이상하다.

이런 이상한 인물들이 전투중에 인간이 어쩌고 새 세상이 어쩌고 하는 매우 추상적이고 현란한 얘기들을 열에 받쳐 해대는데 어이 없지 않을 수가 없지 않나? 여기엔 그런 얘기가 가능한 <에바>같은 장치도 없단 말이다. 그와 같은 장치라곤 '뉴타입' 개념 뿐이다.

암튼 이 애니는 인물 설정에 있어선 완전 실패다. 줄거리 구성도 집약성이 부족하다. 처음에 카미유의 라이벌로 나오던 녀석도 매우 중요하게 그려지다가 중간부턴 비중이 줄어든다. 그러다 마지막에 다시 튀어나온다. 그러면서 뭔가 할 것처럼 하더니 허무하게 죽는다. 사실엔 마지막 두 화에서 웬만한 인물들은 한꺼번에 다 죽어버리고 주인공인 카미유는 미쳐버린다. 카미유가 미쳐버리는 것도 매우 이상한데 초반에 매우 감정적으로 흔들리는 모습을 보여왔지만 후반엔 꽤나 안정적이고 자기 생각도 뚜렷해보였기 때문이다.

건담 시리즈 중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는 작품으로 알려져 있지만 솔직히 난 별로였고 "멋져 보이려고 했고 누군가에겐 그게 먹혔을지 모르지만" 내겐 그저 쓰레기였다. 최근의 작품으로 그래픽도 멋진 <건담 SEED>나 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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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수하고 정제된 시어들, 그러나 긴장의 부재
이동백,『수평선에 입맞추다』

  “순화된 언어와 맑은 서정성으로 시단의 주목을 받아온 시인” 이동백의 첫 시집을 보게 되었다. 잠깐 시인에 대해 살펴보자면, 본명은 이동한이며 1955년 경북 경산에서 태어났다. 대구 계성중학교와 대구고등학교를 거쳐 영남대학교 약학대학을 졸업해, 대구에서 낮에는 약국을 경영하고 밤에는 시를 쓰는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 1996년 월간 『현대시』로 등단했으며, 등단 8년만인 2004년에 첫 시집『수평선에 입맞추다』를 펴냈다.

  쉰에 낸 시집이니 첫 시집치고는 꽤 늦은 편이다. 그래서인지 젊은이의 감성-치열함, 방황, 때론 지나친 열정과 우울-은 느껴지지 않았다. 오히려 관조와 안정의 정서가 강했다. 그래서인지 시는 편하게 읽혔다. 자연 풍경 묘사는 암시적이라기보단 구체적이었고, 일반적으로 취할 수 있는 관점을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이야기들도 꽤 일상적이었다. 그래서일까? 지나치게 편안하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었다. 때로 예술가들은 표면을 비틀어 의도를 숨기곤 한다. 반어나 풍자는 거기에서 나오는 것이다. 비판을 통해 옹호하고, 칭찬을 통해 공격한다. 또 자의식이 강한 이들의 글에선 여러 자아가 엿보인다. 자신의 생각, 그 자신을 관찰하는 자신의 생각. 암시적인 표현들 속에서 모순적인 메시지들이 나타나고 때로 그것들은 조화되기도 하고 부조화되기도 한다. 어쨌든 그러한 겹들이 시를 읽어나가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기도 하지만, 시의 내용과 정서를 더욱 풍부하게 하기도 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동백의 시들에선 시인이 말하고 있는 것과 시인의 의도 사이에 전혀 거리가 없다. 드러나는 표현과 의도는 하나이다. 불편함도 없지만 독자를 고민하게 만드는 힘도 없다.(다음에 볼 시집 『알쏭달쏭 소녀백과사전』과는 매우 대조적이라 하겠다.)

  전반적인 인상은 이 정도로 하고 시를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시인은 풍경, 특히 자연 풍경을 통해 자신의 정서를 표현하고 있다. 제목에서 나타나듯이 맑고 순수한 자연의 이미지들이 시의 전체 이미지를 대변하는 객관적 상관물로 드러난다. 그러면서도 그 자연이 인공에 반대되는 추상적 의미로서의 자연이 아니라 매우 구체적이고 일상적이며 친근한 이미지로 나타난다는 것은 시인의 재주라 할 것이다. 어찌 보면 평소에 ‘자연’이라고 느끼지 못 했던 사물들조차 정갈한 시어들 속에서 자연으로서의 지위를 획득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자연은 언제나 순수한 이미지인 것은 아니다. 그것은 일종의 관념이다. 자연은 때로 가혹하고 무자비한 모습으로 그려질 수도 있고, 우리와 아무 상관이 없는 그저 물질에 지나지 않는 것으로 그려질 수도 있다. 자연은 그 안에 여러 가지를 담고 있지만 그 중에서도 순수라는 조각을 깎아내는 것은 인간의 마음인 것이다. 그런 점에서 이동백 시인의 섬세하게 다듬어진 표현들은 무엇을 대상으로 하든 그 자체로 아름다움을 획득하며 대상을 ‘자연’으로 만든다고 생각할 수도 있을 것이다.

  구체적이고 일상적이어서 친근하면서도 참신한 표현들은 이동백 시인의 강점이다. “온몸에서 잔물결이/ 모기 소리 떼처럼 일어선다”<耳鳴 속의 해일>, “기관차 화부처럼 번들거리던 삽질 소리/ 벌써 소름이 찾아와 쉬이 허리가 쑤신다”<비수처럼 달려올 햇살>, “달빛, 달빛, 환장할 보름 바다”<동백>, “젖은 신발끈 풀린 어느 바람 매운 날/ 가랑잎처럼 쓸리다 다시 만날까”<어라연>, “꿩! 꿩! 가로채는 장끼 한 놈/ 성한 하늘마저 물고 달아난다”<과녁>. 이렇게 정제된 표현들은 생동감을 주면서도 지나친 긴장을 유발하지 않으면서 아름다운 이미지를 전달한다. 이는 이 시인의 최대 장점일 것이다.

  어떤 시인들을 보면 때로 진지함과 심각함이 과도해 평범한 경험에 지나친 의식을 집어넣어 왜곡을 유발하기도 한다. 그에 반해 이동백 시인은 작위적이지 않은 모습을 보여주려는 듯 ‘죽음’에 대한 언급 없이 <벌초>에 대해 쓴다. “철없는 아이들은/ 할아버지 누우신 자리 밟고 뛰어놀아/ 벌초 때마다 쑥쑥 자라네/ (……) 부질없는 생각이/ 수없이 접혔다 풀리는 사이/ 어느새 콧등에 땀방울이 송글거리네”<벌초>. 평범한 경험을 평범하지만 아름답게 묘사함으로써 진실성을 획득한다.

  그러므로 풍경을 바라보는 그의 관점도 일상의 것과 다르지 않다. 그는 자의식을 과장해 대상 속에 자신을 집어넣거나 대상을 속속들이 파헤치지 않는다. 감각으로 전해오는 대상과 그것을 바라보는 시인은 각자의 위치에서도 충분한 조화를 획득한다. “흐릿한 창 너머 가끔 (……) 일어서곤”<작은 섬>하는 모습만으로도 충분하다. 문학의 한 기능이 정서유발이라면 그는 만족할만한 성취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지나친 긴장의 부재는 시인의 인생관에 회의를 품게 한다. 반백년을 살며 인생에 달관을 해서인지 약사라는 안정된 직업을 가져서인지 몰라도 그의 시에서 고통과 좌절과 투쟁 같은 건 찾아보기 힘들다. 대구라는 대도시에 살면서도 자꾸만 교외로 떠도는 그의 영혼은 진정한 현실을 무시하고 있는 건 아닐까? “깜깜한 콘크리트숲/ 아무나 물어뜯고 싶다”<하이에나>는 도시에 대한 안일한 도식에 지나지 않는다고 평한다해도, “늪에서 살아남는 법이란 남은 힘 뿌리에다 맡긴 채 만나는 질편한 세상마다 악수하며 사는 거라고 생각했습니다”<진창 속의 꽃>같은 진술은 안일을 넘어 위험하기까지 하다. 그의 시가 아무리 편안하다고 해도 삶은 마냥 편안하지만은 않은 것이다.

* 2005년 8월 8일 시학 세미나 발제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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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에 친구에게 빌려 TV판으로 무려 50화 짜리인 <기동전사 Z건담>을 보고 있다. 현재 25화까지 봤으니 딱 반을 본 셈이다. 85~86년에 방영된 작품이자 '건담 시리즈'의 두번째 작품으로서 꽤나 고전적인 만화라 할 수 있다. 이 작품이 말하고자 하는 바는 무엇일까? '건담 시리즈' 중 <기동전사 건담>(소위 '퍼스트 건담')의 극장판, <역습의 샤아>, <건담 0080: 주머니 속의 전쟁>, <건담 0083: 스타더스트 메모리즈>를 본 사람으로서 이런저런 배경지식을 동원해 이 작품에 대해 얘기를 해보려 한다. 대부분은 해답이 아니라 질문을 던지는 정도가 되겠지만.

*'전쟁'에 대해*
'퍼스트 건담'에 이은 두번째 작품인 <제타 건담>은 지구연방과 지온공국과의 '1년전쟁'(퍼스트 건담의 배경)이 있었던 0079년으로부터 수년이 지난 0087년을 배경으로 삼고 있다. 지구와 스페이스노이드들 사이의 자꾸만 다툼이 일어나는 것은 정치적, 경제적 이유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그들이 다른 종류의 인식을 갖고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지구는 이미 상당히 황폐화돼서 지구인보다 우주인이 더 많지만 지구의 일부 세력은 우주에서의 자기의 패권을 계속 유지하려고 한다. 하지만 우주인들은 지구에선 더 이상 개발을 하지 않고 환경을 보존해야 하며 인류는 우주로 뻗어나가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밖에도 우주인들은 지구의 중력이 인간의 능력과 상상력을 구속한다고 생각한다. '중력의 우물' 등 중력에 대한 부정적인 표현은 니체의 <차라투스트라...>를 떠올리게 한다.

하지만 정치계에서 진정한 의도는 항상 더럽혀지기 마련이다. 스페이스노이드들의 이상을 추구하던 지온은 그 설립자가 죽고나서 권력욕에 사로잡힌 자가 권좌를 차지했고, 결국 1년 전쟁을 치루다 몰락해버렸다. 하지만 지구연방 내에서도 부패는 일어나고 있었다. 지온잔당을 토벌하기 위해 세워진 '티탄즈'가 정치적 세력을 가진 군벌로 성장해 군내에서 일반 지구연방군을 차별함은 물론 <제타건담> 중반에선 정치권력까지 완전히 장악하게 된다. 티탄즈에 맞선 세력은 지구에 반대하는 에우고(Anti-Earth Union Group)였다. 하지만 티탄즈의 횡포에 반감을 가진 나머지 1년 전쟁 당시 지구연방군의 영웅이었던 브라이트 노아, 아무로 레이 등이 에우고에 가입해 싸우게 된다. 초기 티탄즈, 에우고의 사이에서 모호한 위치에 있던 지구연방군의 삼파전 같았던 전쟁의 양상은 지구연방군이 티탄즈에 완전히 장악당함으로써 티탄즈와 에우고의 정면대결이 된다. 아직 거기까진 안 봤지만 후에는 지온의 잔당인 액시즈가 도리어 티탄즈와 손을 잡는 어처구니 없는 상황도 발생하는 것 같은데 이로써 그들의 표면적인 이념과 실제 행동이 완전히 다름이 드러나는 것이다.

이처럼 아군과 적군이 결코 선악으로 구별되지 않는 것이 건담 시리즈의 특징이다. 이념은 권력에 의해 더럽혀진다. 전장에서 싸우는 사람들은 나름대로의 신념 때문에, 또는 자신이 속한 집단의 상황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싸운다. 출세를 위해 싸우는 이도 있고, 오직 개인적인 이유 때문에 싸우는 이들도 있다. 어떤 파일럿들을 보면 모빌슈츠(건담 같은 로봇)를 조종하기 위해 전쟁에 참가하는 것 같아보이기도 한다. 이러한 설정 등은 전쟁이라는 자체에 대해 의문을 품게 한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싸움에 나선 이들은 너무나도 열심히 싸운다. 특히나 <제타건담>에는 호전적이고 공격적인 인물들이 너무나 많이 등장하고 그런 성향을 매우 직접적으로 표현하기 때문에 그런 모습들을 보면 이 작품은 '주전주의' 작품으로 보이기도 한다. 특히나 다른 시리즈와는 달리 상관이 부하의 뺨을 때리거나 주먹을 날리는 장면이 매우 자주 나온다.(평균적으로 회당 1회 정도?) 이는 보는 사람을 매우 불편하게 하는데 웃기는 건 그런 상황이 매우 당연한 것처럼 그려지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파일럿들은 맞는데 불만을 품는 게 아니라 전장에서 제대로 싸우지 못 한 것에 더 화를 내고, 출격하지 말라는대도 무리하게 출격을 하곤 한다. 다들 전쟁광인가? 이러한 연출이 부정적인 모습을 보여주려는 건지, 아니면 폭력과 호전성을 긍정하는 것인지, 정확한 감독의 의도는 모르겠지만 난 후자의 느낌을 더 많이 받았다.

<제타건담>의 호전성에도 불구하고 건담 시리즈 전체에서 빠지지 않는 주제는 대량학살에 대한 반감이다. '1년 전쟁'에서 지구에 대한 콜로니 투하가 성공한 이후 콜로니를 통째로 투하함으로써 도시를 완전파괴하는 작전 등이 이후에도 몇 번 감행되는데 이러한 작전에 대해 주인공들은 분노를 금치 않는다.(그래서 물론 주인공들의 활약으로 이런 작전들은 성공하지 못 한다.) <제타건담>에선 티탄즈에 반대하는 콜로니에 티탄즈가 독가스를 살포해 주민들을 몰살시키고는 은폐한 얘기가 나오는데 이는 마치 80년 광주를 떠올리게 하기도 한다. 게다가 티탄즈가 정상적인 군지휘계통을 무시하고 군을 장악한다는 점은 전두환을 주축으로 한 '하나회'를 생각나게 하기도 한다. 이런 이유 때문에 <제타건담>은 당시 한국에서 방영되지 못 한 것 같다.

대량학살 또는 핵(또는 핵과 비슷한 무기들)에 대한 매우 부정적인 이미지는 일본 애니 전체에서 매우 두드러지게 나타나곤 한다. 물론 핵무기의 가공할 위력과 대량학살, 환경오염을 부각시키는 것이 나쁜 것은 아니지만, 주전주의, 호승심, 신체적 폭력, 신념과 무관한 사무라이적인 라이벌 구도 등을 별로 부정적으로 그리지 않는 것을 볼 때 핵무기에 대한 부정적 이미지 연출은 다른 의도가 있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 없다. 핵무기에 대해선 일본이 전쟁의 피해자가 되므로 그것을 강조하면 전범국으로서의 자신들의 더 심한 범죄들이 덮어질 수 있다는 의도가 의식적이진 않더라도 깔려있다는 생각도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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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Star Wars: Clone Wars (Vol. I)
감독: Genndy Tartakovsky
제작년도: 2003

<스타워즈: 클론 워즈>는 <스타워즈 에피소드 2>와 <스타워즈 에피소드 3> 사이를 이어주는 애니메이션이다. 얼마 전 친구를 통해 이런 작품이 있다는 걸 알게 되어 구해보게 되었는데 스타워즈 팬이라면 꼭 한 번 보기를 추천한다.

1부는 공화국에 대항하는 은행조합 및 두쿠 백작의 세력과 맞서는 제다이들의 활약을 다루고 있다. 본편에선 미처 보여주지 못 했던 제다이들의 가공할 능력과 원맨쇼를 볼 수 있다. 파일럿으로서 비행대를 지휘하는 애너킨은 마치 건담의 '뉴타입'처럼 상대 비행기의 위치와 움직임을 귀신처럼 알아낸다.(물론 그의 광선검 대결도 볼 수 있다.) 지상에서 활약하는 오비완은 마치 중세의 기사처럼 싸우는데 개인전은 물론 지휘관으로서의 능력도 탁월하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대단한 건 바로 메이스 윈두. <에피소드 3>에서 시스 로드에게도 밀리지 않는 포스를 보여주었지만 애너킨에게 허무하게 죽었던 윈두는 <클론 워즈>에선 혼자서 거의 1개 군단을 쳐부수는 포스를 보여준다. 윈두가 싸우는 걸 보면 무협 영화 같아서 장풍을 날리는가 하면 기기묘묘한 염력도 보여주곤 한다.

위와 같은 액션은 무척 과장돼있기 때문에 아마 영화에서라면 표현하기 어려웠거나 무척 유치해보였을 것이다. 하지만 애니이기에 그 역동성을 간직한 채 유치하지 않게 표현될 수 있었다. 그림체는 <파워퍼프걸>을 생각하면 되는데 이 작품을 만든 스튜디오에서 만들었다고 한다. <파워퍼프걸> 정도는 아니지만 윤곽선이 굵고 뚜렷하며, 전경이 되는 물체에는 그라데이션(색조를 서서히 변화시켜 칠함으로써 음영을 표시하는 것)을 전혀 사용하지 않고 있다. 이런 그림체는 비록 단순하더라도 역동성을 표현하는 데는 무척 효과적이다.

참, <에피소드 3>에서 꽤(?) 약하게 나왔던 그리보스 장군의 위력도 여기선 제대로 느낄 수 있다. 다수의 제다이로도 그를 당해낼 수가 없는데 그만큼 오비완이 셌다는 걸 알 수 있다.

그들이 '제다이'가 아니었다면 마치 미국 초인 만화처럼 보였을 정도로 액션 위주의 미국 애니지만 개인적으론 <에피소드 1>이나 <에피소드 2>보다 재밌었다. <에피소드 1,2>의 경우 구3부작(<에피소드 4,5,6>)의 그림자가 너무 길게 드리워져 있어 액션만으론 그 감흥을 채울 수 없었기 때문일까? 물론 <에피소드 3>는 좋았다. 특히 <A New Hope>(에피소드 4의 부제)의 명장면을 떠올리게 하는 마지막 장면이!

암튼 조만간 클론 워즈 2부도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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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울한 미학과 액션을 동시에 충족시켜줬던 팀 버튼의 배트맨 시리즈(배트맨, 배트맨 리턴즈)는 조엘 슈마허(배트맨 포레버, 배트맨 앤 로빈)에 이르러 진부하기 짝이 없는 액션물로 전락해버리고 만다. 하지만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과 크리스찬 베일(브루스 웨인 역)에 의해 배트맨은 예전의 위용을 되찾은 것 같다.

어린 나이에 강도에 의해 부모님을 동시에 여읜 부르스 웨인은 악인들에 대한 복수심에 불타게 된다. 그는 분노를 안고 세상을 떠돌다 듀커드(리암 니슨 분)라는 인물과 라스 알굴의 닌자 집단을 만나 고된 수련을 하게 되고 출중한 무사가 된다.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 악인에게 베풀 것은 무자비한 복수 밖에 없다는 그들의 이념에 동의하지 못 하고 탈출한다. 고담 시로 돌아온 브루스 웨인은 자기만의 방식으로 악과 싸우다 고담 시를 완전히 파멸시키려는 세력과 맞닥뜨리게 되고 그들이 바로 '어둠의 사도들'임을 알게 된다. 그들은 나름대로의 정의감에 기반해 악에 찌든 고담 시는 완전히 파멸시켜버려야 한다고 생각한 것이다. 하지만 결국 그들에게 있어 정의의 실현은 무차별 학살에 다름 아니다. 누가 이길지는 뻔히 알 것이라 생각한다.

이 영화의 진짜 미학은 다른 데 있지만 '복수'에 대한 진지한 이야기도 영화를 빛내는 데 한몫 하고 있다. 초반에 분노와 복수심에만 불타던 브루스는 정도를 가리지 않는 복수는 또다른 악에 지나지 않음을 알게 된다. 최근의 런던 테러를 비롯해 9/11 테러와 아프간 전쟁 등을 생각해보면 정말 그렇다. 미국의 파렴치하고 이기적인 태도와 전쟁 범죄가 그 원인이라 하더라도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런던 테러와 세계무역센터 테러는 용서받을 수 없는 범죄이다. 더군다나 이런 식의 테러는 부시와 블레어의 대테러 강경노선을 더욱 강화해주는 악순환을 낳을 수 있다. 또 이런 테러에 대한 복수심에 기반한 전쟁은 역시 또다른 테러를 부추기는 것이다. (이건 뻘소리.)

하지만 이 영화가 진짜 멋진 이유는 '멋지기' 때문이다. 아무런 초능력이 없는 사내를 다른 '맨'들 못지 않게 이렇게 '멋지게' 그려낼 수 있었던 것이 이 영화의 성공 이유다. 팀 버튼 식의 음울함은 아니지만 나름대로 진중한 분위기를 꾸준히 연출함으로써 자칫 우습게 들릴 수도 있는 배트맨의 낮게 깔리는 목소리도 영화의 분위기에 딱 들어맞고 있는 것이다. 모건 프리만, 게리 올드만 등의 쟁쟁한 조연들과 알프레드 집사라는 빼놓을 수 없는 인물도 감초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

누구와 달리 '맨 시리즈'를 좋아하는 나는 덮어놓고 아무거나 좋아하는 것은 아니다. 난 <X-멘>을 특히 좋아하는데 여러 영웅들이 출현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악의 진영조차도 단순하게 악으로만 치부하기 어려운 복잡함을 띄고 있기 때문이다. 악의 진영의 지도자라 할 수 있는 매그니토(이안 맥켈렌 경 분-'반지'에서 간달프 역을 맡았음.)는 유대인으로 홀로코스트의 고통을 안고 있고, 그 때문에 인류를 미워한다. 선한 진영인 사비에 아래에 있는 초인들도 약간의 견해만 바꾸면 언제든 상대편으로 넘어갈 수 있고 또 <X-멘 2>에선 실제로 그런 일들이 일어난다.

악역도 인간적으로 그리는 것은 매우 중요하고 좀 유치하긴 하지만 <스파이더 맨>도 그것을 이용하고 있다. 하지만 <스파이더 맨>의 가장 주된 주제는 '연애'라고 할 수 있는데 그것이 성공한 이유는 비교적 밝은 분위기와 커스틴 던스트라는 캐스팅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커스틴 던스트 정도는 돼야한단 말이지! (<브링 잇 온>의 주연이기도 했는데 그때부터 참 귀엽단 생각을 했다. ^^;) 케이티 홈즈(<배트맨 비긴즈>의 히로인?) 따위로 무슨 연애 얘길 풀어가느냔 말이다. <배트맨 비긴즈>에선 연애가 전혀 중심이 아닌데 천만다행이라고 생각한다. 정말 <건담 0083>의 니나 퍼플턴에 버금가는 히로인이라고 생각한다.(별로라는 점에서. 이런 비유 이해하는 사람 있을라나? -_-;;)

암튼 크리스찬 베일 넘 멋있어. 그 목소리 또 듣고 싶다.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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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이상과 이하 이후>
연세대학교 연극과 인생 제22회 정기공연
작/연출: 고경진
배우: 김신각

  지난 월요일에 무악 극장에 혼자 가서 연인의 공연을 보았다. 공연한다는 건 회경이가 알려주었다. 사실 회경이도 시체 역할을 한 배우였지만 위에 안 쓴 이유는 대사가 없었기 때문이다. 시체가 무슨 말을 하겠는가? -_-; 그러므로 이 연극은 일인극이었다.
  배경은 90년대인 것 같고 주인공은 방위병이다. 그는 원래 출퇴근을 하는 방위였는데 상주해야 하는 준군사시설로 전출되었다. 시내의 가스관 관리시설인데 혼자서 시설을 지키고 있다. 그리고 밤에 순찰을 도는 사이 한 남자가 들어와 손목을 긋고 자살해버린다. 돌아와 그 남자의 시체가 안에 있는 걸 본 주인공은 어찌 할 줄을 몰라한다. 진짜로 어찌 할 줄을 몰라한다! 열쇠를 두고 들어오는 실수를 범한 주인공은 시체와 함께 방에 갇혀버리는데 고참한테 연락해 놓고는 혼나는게 두려워 시체가 있다는 보고도 하지 못 한다. 그리고는 혼자서 시체한테 얘기를 한다. 처음엔 아저씨라 부르다가 나중엔 형님이라 부르고 왜 죽었는지 혼자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그러면서 그는 점점 죽음을 미화하게 된다. 그 자신이 가정불화와 군대 부적응으로 심각한 고통을 겪고 있었기 때문이다. 아버지는 상습적으로 폭력을 행사했고 얼마 전엔 다른 여자와 바람이 나서 아예 집을 나가버렸다. 주인공이 전출되게 된 것도 부모님과 같이 살 필요가 없는 사람은 출퇴근하는 곳에서 근무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가정 파탄으로 그에겐 돌아갈 곳이 없어졌기 때문이다. 암튼 여러모로 힘든 상황인데... 흠, 그렇다 해도 별로 주인공에게 공감이 가진 않았다. 상식적으로 생각할 때 이해가 안 가는 것들이 많았다. 여러 가지 장치들이 쓰이긴 했다. 오이디푸스 콤플렉스, 죽음으로써 영생을 갈구하는 흡혈귀 얘기, 사소한 것에 집착하는 주인공의 습관 같은 것들 말이다. 하지만 시체를 보고 보고를 하지 않은 것이 자꾸만 맘에 걸렸다. 일단 받아들이고 감상해야겠지만 그게 안 됐다. 그게 아니더라도 주인공의 성격이 심히 맘에 안 들었다. 그래서 별로 공감할 수 없었다. 신각이의 연기는 보통이었다. 아마추어로서 특별히 지적할 건 없지만 성량이 좀 적지 않았나 싶다. 어쨌든 근본적으로 극본이 별로 맘에 안 들었다. -_-;
  흠. 그리고 무악극장 시설이 꽤 열악했다. 이동식 목재 무대 같은 것 위에 객석을 만들었는데 자꾸만 흔들려서 진동이 느껴졌다. 난 이런 진동이나 소음에 극도로 민감하다. 조금이라도 진동을 덜 느끼려고 계속 앞자리로 왔을 정도다. (앞자리가 낮으니까 높은 곳보다 흔들림이 덜 하다.) 하지만 역시 진동은 컸다. 처음엔 관객 중 누군가가 발을 쿵쿵거리는 줄 알았다. 그런데 내가 직접 발로 바닥을 두들겨보니 거의 소리가 나지 않았다. 객석 바닥 자체의 수평 및 고정 문제였다. 이런 연극 외적인 것도 좀 신경써줬으면 좋았을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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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년의 수인>
작/연출: 오태석

  대학로의 아룽구지라는 극장에서 지난 14일에 <천년의 囚人>앵콜 공연(초연은 98년이었던 것 같다.)을 보았다. 오태석이라는 연출가의 작품이었는데 매우 유명한 사람인 것 같다. 연극에 문외한인 나로서는 이번에 처음 들어본 이름이지만 말이다. 어쨌든 이제까지 내가 본 다섯 편의 연극(학교에서 본 연극 제외. 암튼 정말 적다.) 중에 가장 규모가 큰 연극이었다. 무대도 넓었고 등장인물도 많았다. 관객도 많았다!(난 관객이 셋뿐인 연극도 구경한 적 있다.)
  공간적 배경은 정신병원, 하지만 수감자들이 생활하는 정신병원이다. 두 명의 주인공이 나오는데 한 명은 김구 선생을 저격한 안두희, 한 명은 80년 5월 광주에서 여학생을 살해한 병사이다. 병사는 자신이 저지른 일 때문에 끊임없이 괴로워한다. 그는 여학생 살해 혐의 때문에 조사를 받는데 그를 조사하는 헌병들은 그를 거세게 밀어붙인다. 안두희 역시 국가로부터 조사받는다. 그는 자신이 신념에 따라 살해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결국 그도 누군가의 사주를 받아 행한 것이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는 백범을 죽이는 일이 옳은 일인 줄 알고 행했다고 말한다. 북으로부터 백범 암살의 지령을 받았던 비전향 장기수도 등장한다. 같은 임무를 가졌던 이 비전향 장기수와 안두희는 청년을 구제해달라는 탄원서를 작성하게 된다. 하지만 마지막에 가서 광주에 있었던 그 불쌍한 청년 병사는 안두희로 오인받아 과격청년들에게 살해당하고 만다.
  난 이것이 가해자들의 아픔에 대한 얘기라고 본다. 안두희나 병사나 모두 가해자였다. 하지만 연극 속에선 끊임없이 조사원과 헌병들에게 괴롭힘을 당한다. 안두희는 대낮에 거리에서 린치를 당해 계속 병원 신세를 진다. 가족들도 심한 고통을 겪는다. 하지만 그들이 정말 최종 책임자인가? 안두희야 그렇다치고 불쌍한 병사에겐 명령에 따른 죄밖에 없다. 게다가 그가 정말 여학생을 쏘아 살해했는지조차도 명확하지 않다. 진짜 죄를 물어야할 사람은 따로 있는 것이다. 그러면서 연극은 안두희의 경우도 어느 정도 역사의 희생양인 것처럼 보여준다.
  하지만 정말 그럴까? 연극에선 유엔의 선언문 두 가지가 낭독된다. 하나는 설사 명령에 따라 행했더라도 아랫사람에게 책임이 없는 것은 아니라는 것이다. 그리고 다른 하나는 자신의 명령 또는 권한 내에서 행해진 일이라면 아랫사람이 행한 일에 대해 윗사람에게 책임이 따른다는 것이다. 그럼 안두희와 병사 모두 부분적 책임만 있는 것일까?
  연극에서도 안두희와 병사의 경우를 구분하고 있지만 난 심각하게 책임 정도가 다르다고 본다. 일단 안두희는 그가 누군가의 명령을 받아 행했다고 했더라도 그는 자신의 일이 옳다고 생각하고 있었다. 게다가 그는 장교였다. 청년은 병사였을 뿐인데 말이다. 이는 중요한 차이라고 본다. 대체 병사에게 무슨 책임을 물을 수 있는가? 병사에게는 아무런 판단할 권한을 주지 않는 군대에서 말이다. 병사가 명령을 의심하고 스스로 판단하기 시작하는 순간 그는 병사가 아니다. 그냥 한 명의 사람일 뿐이다. 그는 더 이상 군인이 아니다. 나는 병사가 한 일의 모든 책임은 궁극적으로 지휘관에게 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장교는 다르다. 설사 하급 장교라 하더라도 장교에겐 판단할 권한과 명예와 특권이 주어진다. 그들이 명령 위반과 불의 사이의 진퇴양난에 빠져 어찌할 도리가 없는 지경에 빠지게 된다 하더라도 그들에겐 책임이 있다. 뭐, 난 그렇게 생각한다는 뜻이고, 이런 문제는 연극에선 전혀 다루어지지 않는다.
  솔직히 말해서 연출가가 무슨 얘기를 하고 싶었는지 잘 모르겠다. 비극적인 상황 속에서 가해자들의 고통조차 비극이라는 것일까? 오히려 피해자인 것처럼 느껴지는 병사와 전혀 대조되는 안두희를 등장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그 자신의 잘못 때문에 그의 가족이 심한 고통을 겪는 것은 문제지만 그가 고통받는 건 인과응보 아닌가? 또 비전향 장기수는 왜 등장하는 걸까? 줄거리상 꽤 비중있는 인물이었지만 난 그 사람이 연극 속에서 의미하는 게 뭔지 이해할 수 없었다.
  음, 여러 가지 중요한 것들을 이해하지 못 한 걸 보니 아마 전체적으로 작가의 의도를 읽는 데 거의 실패하지 않았나 싶다.
  그렇다고 재미없었던 건 아니다. 주제가 이해가 안 됐던 거지 표현된 바를 감상하지 못 했던 건 아니니까. 프로답게 무대 활용이나 진행이 무척 매끄러운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연기가 정말 매우 뛰어났다. 내가 이제까지 본 연극 중에서 가장 뛰어난 연기였다고 해도 지나치지 않았다. 어찌나 역할에 몰입했는지 우는 장면에선 진짜로 통곡을 할 정도였다. 내용보다는 연기에 감동을 받았다. 또 중간중간 웃음을 터뜨리게 하는 장면도 있었다.
  같이 본 아름이의 말로는 배우들이 서로를 바라보면서 대사를 하는 게 아니라 관객을 바라보면서 관객에게 말하듯 대사를 하는 게 오태석 연출의 특징이라는 데 난 그게 특징인 줄도 몰랐다. 그냥 좀 특이하다고 생각했는데 다른 연극들도 이렇게 하는 게 많겠지 하고 생각했을 뿐이다. 또 배우들이 대부분 맨발로 연기하는 것도 이 사람 작품의 특징이라는데 그건 거의 눈치 채지 못 했다. 연극을 많이 봤어야 알지. 암튼 표현은 상당히 멋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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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터 잭슨의 영화 <반지의 제왕> 3부작의 첫 편에 대한 감상이다. 주관적인 감상과 느낌만 주로 말하려고 한다. 비평을 하려면 다시 한 번 봐야하는데 지금 그러긴 좀 귀찮다.
그리고 원작에 대한 비평이나 감상도 하지 않을 것이다. 톨킨의 원작은 너무나 훌륭해서 감히 비평하기가 힘들다. 공부가 더 필요하다. 그러니 영화 얘기나 하겠다.

피터 잭슨은 처음엔 영화를 두 편으로 만드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제작비를 대기로 했던 회사에서 한 편으로 만들 순 없냐고 해서 다른 제작사를 찾아갔다. 그런데 그 제작사의 CEO는 정말 통이 큰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는 세 편으로 만들 것을 제안했다. 그 제작사가 바로 New Line Cinema이다. 암튼 그래서 잭슨은 이 방대한 소설을 다행히도 세 편의 영화로 만들 수 있었던 것이다. 모든 내용을 다 넣으려면 사실 세 편으로도 부족하지만 말이다.

앞서 언급했듯이 원작의 내용이 너무 방대했기 때문에 상당한 각색이 필요했다. 1편에서 묵은 숲(Old Forest)과 톰 봄바딜은 빠져버렸다. 피핀과 메리가 합류하게 된 경과도 꽤, 아니 아주 많이 단순해졌다. 사실 원작의 팬으로서 처음엔 이런 것들 때문에 불만이 많았다. 영화가 원작을 망쳐놨다는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그렇지 않았다. 원작과 똑같이 영화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이고, 톨킨의 원작은 영화에 적합한 구성을 가지고 있지도 않다. 피터 잭슨은 나름대로 톨킨의 생각을 살리면서도 피터 잭슨판 <반지의 제왕> 영화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 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해도 아르웬이 프로도를 태우고 브뤼넨 여울을 건넌 것은 마음에 들지 않았다. 원작에선 아르웬 대신 요정전사 글로르핀델이 나오고 프로도도 누군가와 함께 말을 타고 가는 게 혼자 여울을 건넌다. 그리고 용감하게 칼을 들고 나즈굴들에게 외치는 것도 프로도다. 이렇게 용감한 프로도의 모습을 아르웬이 가로채다니. T_T 게다가 여울 장면은 종종 1권의 표지로도 쓰일 만큼 책에서도 아주 흥미진진하고 멋진 장면이란 말이다! 하지만 여울을 건너기 전 아르웬이 나즈굴들을 피해 말을 타고 전력질주하는 장면은 꽤 멋있었다. 피터 잭슨다운 박진감 넘치는 장면이었다. (병 주고 약 주고. -_-)

캐스팅에 있어선 비고 모텐슨(아라곤 역)도 좋았지만 최고는 이안 홀름(빌보 역)과 션 빈(보로미르 역)이었다. 이안 홀름은 마치 실제 빌보가 연기하는 듯한 느낌이 들 정도였다. 그 쾌활함이라든지 반지를 대할 때의 변하는 모습들이 말이다. 또 그 말투는 어떤지. 재빠르게 말하면서 단어들을 집어삼키는 데(들어보면 안다.) 정말 빌보스럽다는 생각이 들었다. 션 빈은 강인하고 긍지 높은 전사의 영혼을 가졌으면서 반지에 유혹당하는 오만한 성격의 보로미르 역할을 훌륭히 해냈다. 선악이 공존하는 모순적인 캐릭터이기에 힘들었을 텐데 말이다. 사실 그렇게 연기가 눈에 띄진 않았지만 나중에 파라미르 역에 실망을 해서 그런지 보로미르 캐스팅이 잘 된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어쨌든 그래서 지금 홈피 대문은 보로미르 사진이다.)

여자 중엔 갈라드리엘을 맡은 케이트 블란쳇이 가장 좋았다. 실제 모습도 아주 예쁘다. 최근엔 <에비에이터>에서 캐서린 햅번 역을 맡아 열연하기도 했다. 그리고 휴고 위빙이 엘론드 역을 맡았다. 좋았는데 문제는 자꾸 '스미스 요원'을 떠올리게 한다는 것이었다. ^_^

암튼 엘론드와 갈라드리엘이 (마치 텔레파시하듯) 대화하는 장면이 가끔 나오는데 이 둘이 무슨 관곈가 궁금한 사람들이 있을 것이다. 사실 이 둘은 장모와 사위다. 제3시대 109년에 엘론드가 켈레보른과 갈라드리엘의 딸 켈레브리안과 결혼하고, 130년에 아들 엘라단과 엘로히르가 태어난다. 그리고 아르웬은 241년에 태어난다. 엘론드는 엘로스와 형제인데 그들에겐 인간과 요정의 피가 모두 섞여 있어 둘 중 하나를 선택할 수 있었다. 엘론드는 요정을, 엘로스는 인간을 선택하고, 아라곤은 그 엘로스의 후손이다. 그러니 사실 아라곤과 아르웬은 먼 친척인 셈이다. 어쨌든 아라곤은 제3시대 2931년에 태어나는데 아르웬과는 2690살 차이가 나는 셈이다. 1편의 얘기는 3018년에서 3019년에 걸쳐있다.

흠. 영화와 관계 없는 얘길 해버렸군. 어쨌든 21세기가 나은 최고의 3부작이니 기회가 되면 꼭 보길 바란다. 20세기의 위대한 3부작은 <스타워즈>였다. 21세기에도 위대한 3부작이 될 것 같았던 <스타워즈>의 새 3부작(에피소드 1,2,3)은 에피소드 1,2가 망해버렸다. 하지만 에피소드 3를 기대하고 있다. 개봉하면 봐야지.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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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크레더블(The Incredibles)은 디즈니-픽사 스튜디오 콤비가 만들어낸 또하나의 명작이다. 디즈니는 배급만 했겠지만 암튼 기존의 디즈니 스토리의 공식을 탈피했다는 평을 들은데다 미국에서 엄청난 흥행을 기록했다. 난 얼마 전에 이 영화를 봤는데 정말정말 재밌었다!

디즈니에서 그 동안 강조해온 것은 가족의 가치였고, 이 영화도 가족의 이야기(비록 초인 가족이긴 해도)이기 때문에 당연히 가족애가 깔려있지만 이 영화의 주제는 그게 아니다. 이 영화가 보여주는 액션, 그 박진감과 흥겨움이 바로 이 영화의 주제이다. 미스터 인크레더블(Mr. Incredible)이 집채만한 로봇을 들어집어던지고, 일래스티걸(Elastigirl)이 낙하산 대신 몸을 쭉 늘이고, 대시(Dash)가 물을 튀기며 수면 위를 달리고, 바이(Vi)가 투명해지고, 프로즌(Frozone)이 빙판을 만들며 달리는 모습들, 그 모습들을 보는 것 자체로 관객들을 희열과 쾌감을 느낄 수밖에 없는 것이다. 게다가 그들은 그런 능력을 대놓고 쓸 수 없는 상황에 있지 않았는가? (뭔 얘긴진 영화를 보면 안다.)

게다가 역시 픽사는 여기서 또 한 번 엄청난 그래픽을 보여준다. 그 정교함과 사실성과 속도는 전작인 <니모를 찾아서>를 능가하는 듯하다. 캐릭터 디자인도 상당히 훌륭하다. 꽤나 공을 들인 영화라는 걸 알 수 있다.

물론 이건 오락 영화다. 하지만 난 오락 영화가 예술 영화보다 못 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그리고 난 사실 예술보다 오락을 좋아한다.) 암튼 이렇게 화려하고 오락에 충실한 영상을 갖춘 영화를 만나보기도 쉽지 않다. 영웅물을 좋아하는 사람, 애니를 좋아하는 사람, 모두 보기를 추천한다. 이것저것 설명하고 비평하는 것보다 한 번 보고 즐기는 게 나은 영화다.

[덧붙임] 난 영웅물 중에서도 X-맨처럼 여러 명 나오는 걸 좋아하는데 이것도 여러 명이 나와서 좋다. ^_^; 이 영화에서 가장 맘에 드는 캐릭터는 대시! 어렸을 때 본 외화 <플래시맨> 같아. 플래시맨은 빨리 달리다가 심지어 빛의 속도를 능가해 시간여행을 하기도 하지. 말도 안 돼. -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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